오피니언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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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한국식품산업클러스터진흥원, '김영재 이사장' 취임 1주년'[익산=한국복지신문] 윤상현 기자= 한국식품산업클러스터진흥원 (이하 ‘식품진흥원’) 김영재 이사장은 취임 1주년을 맞아 "지난 1년 간 직원들과 함께 노력해 많은 성과를 이뤄냈다" 면서 “앞으로 국가식품클러스터를 국내 식품산업의 혁신 플랫폼이 될 수 있도록 고도화 하겠다“ 고 4일 밝혔다. 이날 김영재 이사장은 2021년 3월 취임 하자마자 식품산업이 코로나19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핵심산업으로 부상함에 따라 기능성식품, HMR 등 미래유망 식품에 대응방안을 마련했다고 전했다. 특히, ‘HMR기술지원센터’ 를 개소 (2021년 3월) 하고, 연중 안정적 원재료 중계ㆍ공급을 위한 ’농식품원료중계공급센터’ 를 준공 (2021년 12월) 하는 등 기업지원 신규 인프라 구축으로 국가식품클러스터 성장 동력을 확보했다. 또한,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로부터 제1호 고령친화산업지원센터로 지정 (2021년 3월) 받고 최초로 8개 기업 27개 제품을 ’고령친화 우수식품‘ 으로 지정했다. 아울러, 산업단지 분양률의 발목을 잡고 있던 기업유치 성과 제고를 위해 정부ㆍ지자체와 적극적인 규제개선을 추진해 취임 전 ‘2020년 말 산업단지 분양율 49% 에서 1년이 지난 현재 70% 수준으로 높였으며 천일식품, 아하식품, FB홀딩스 (선키스트) 등 국내 경쟁력 있는 앵커기업을 유치해 2022년 현재 117개사가 입주 계약을 완료하고 이 중 79개사 (68%) 가 착ㆍ준공 했다. 더불어, 장기적인 코로나19 지속에 따른 기업 피해 최소화를 위해 상생 플랫폼 구축과 온라인 식품대전 개최, 라이브커머스 등 입주 기업의 판로확보 지원에 노력하는 한편, 대학생과 청년들을 위한 창업교육, 시제품 제작, 투자연계 등을 통해 81건의 창업과 사업화 성과를 냈으며, 식품 실무 교육으로서는 전국 최초로 장비 실습 교육과정을 개설하고 운영해 905명을 지원했다. 덧붙여, 친환경 포장 등 기술수요에 의한 사업을 확대하는 등 기업 맞춤형 기술지원으로 수출계약, 코스닥 상장, 매출증대 등의 가시적 성과들도 창출되고 있으며,식품 분야 최초로 AAALAC-I 국제인증을 획득해 기술지원기관으로써의 우수성도 입증했다. 최근 식품진흥원의 ‘농식품 상품화 자원 통합공유 플랫폼 구축사업’ 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관하는 '민간 비즈니스 창출 공공혁신 플랫폼 3대 구축사업' 으로 선정됐다. 디지털 기반이 취약한 식품산업 전반에 산재한 정보를 통합해 R&D기술, 인프라 공유, 생산ㆍ인력중개 등 산ㆍ학ㆍ연 연계 쌍방향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김영재 이사장은 “2023년까지 식품진흥원의 12개 기업지원 시설이 모두 구축예정으로 시설 인프라 구축이 마무리됨에 따라 국가식품클러스터의 조성목적에 부합하는 본연의 기능과 역할을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 면서 “물리적으로 집적화된 산업단지를 넘어 디지털 기반 산ㆍ학ㆍ연 플랫폼으로 고도화해 식품산업 관련 자원과 정보가 모이는 디지털 국가식품클러스터를 구축할 계획” 이다고 전했다. 이어, “국가식품클러스터를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규모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면서 “2단계 사업과 푸드파크 사업도 궤도에 오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고 말했다. 이밖에, 김영재 이사장은 “국가식품클러스터 산업단지 조성 전체면적 232만㎡ 중 실제 입주할 수 있는 면적은 34만㎡로 전체면적 15% 수준 밖에 남지 않아 국내 경쟁력 있는 식품 기업들이 투자하고 싶어도 분양할 수 있는 면적이 부족한 상황이다” 면서 ”20대 대선 여ㆍ야 공약에 2단계 사업이 포함된 만큼 정부와 국회를 설득해 조속히 사업이 추진될 수 있도록 하겠다” 고 의지를 피력했다. 김영재 이사장은 “국가식품클러스터가 우리나라 식품산업을 견인할 수 있도록 변화와 혁신을 주저하지 않을 것” 이며 “초심으로 돌아가 식품산업 관계자의 기대에 부응 할 수 있도록 남은 임기도 최선을 다하겠다“ 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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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효봉 '여태명 교수'[천안=한국복지신문] 한국복지신문 취재부= '우수' 라는 말은 눈이 녹아서 비가 된다는 말로 '비가 내리고 싹이 튼다' 는 24절기 중 두번째 절기로 양력 2월 19일 또는 20일 무렵이다. '우수 경칩' 에 대동강도 풀린다는 속담을 믿고 발길을 나섰지만 날씨는 제법 쌀쌀하다. 천안시 동남구 다가 11길에 새롭게 둥지을 튼 여태명 교수 작업실을 찾아 갔다. 반갑게 맞아주며 귀한 차 한잔을 내어 주신다. 차 한잔 마시면서 자꾸 눈이 가는 테이블이 있다. 바로 여태명 교수님 술 보관 전용 캐리어다. 한편, 여태명 교수 작업실 옆에는 변방에서 중심으로 '한국문화예술 네트워크' 사무실도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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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신형공군 1호기 서체 주인공, 효봉 여태명 교수[서울=한국복지신문] 한국복지신문 취재부= 효봉 여태명 교수는 신형공군 1호기 항공기 외부디자인에 적용되는 고딕서체는 한국 창제원리에 바탕을 두고 훈민정음, 용비어천가, 독립선언문 서체를 기반으로 적용됐다고 16일 밝혔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중동 3개국을 방문하기 위해 지난 15일 공군 1호기로 6박 8일 일정으로 아랍에미리트,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를 방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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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컬럼] 캄보디아와 한국의 문화재 그리고 프랑스의 약탈[전문가 컬럼=한국복지신문] 김경화 기자= 캄보디아와 한국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 중 역사적 사실에 대한 대표적 공통점은 식민 지배를 당한 것이다. 한국은 일본에 의한 36년의 식민기(植民期)가 있었고 캄보디아는 무려 90년(1863~1953) 동안 프랑스로부터 식민 지배를 받았다. 그런데 우리가 겪은 일본의 식민 지배는 아픈 역사로 남아있지만 캄보디아는 자신들이 주변국으로 부터의 숱한 외침을 이겨내지 못해서 스스로 프랑스에게 보호를 요청한 자발적 보호 요청이었기에 우리와 달리 프랑스에 대한 반감이 크지 않다. 그리고 캄보디아와 한국은 프랑스와 일본으로부터 식민 지배를 당하며 겪었던 소중한 문화재를 그들에게 약탈당한 일은 지금까지 아픔으로 남아있다. 한국은 프랑스에게 식민 지배를 당하지 않았음에도 그들에게 빼앗긴 국보급 문화재가 있다. 【필자는 본 칼럼에서 문화재 도굴을 포함한 일체의 행위를 ‘약탈’이라는 용어로 표현하고자 한다. 그만큼 다른 나라의 문화재를 무력으로 빼앗던, 몰래 반출했던 이것은 모두 중요한 범죄 행위이기에 ‘약탈’로 표현하겠다.】 한국은 병인양요 때 프랑스로부터 약탈당한 문화재 중 국보급 중요 문화재로는 '외규장각'을 비롯하여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제작된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인 '직지심체요절'이 있다. 다행히도 이 중 '외규장각'도서는 1993년 프랑스 고속철 도입에 대한 반대급부로 ‘영구대여’라는 명목으로 한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여기서는 신미양요 때 미국이 수탈한 문화재나 임진왜란과 일본 식민지배때 빼앗긴 수많은 문화재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겠다.】 캄보디아는 프랑스로부터 식민 지배를 겪는 동안 그들에게는 국가의 존립이 최대의 목표였기에 식민기(植民期) 동안 그들의 숱한 문화재를 지키는데 전혀 힘을 쓰지 못하였다. 나아가 문화재 보호나 복원에 대한 욕심은 꿈같은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러나 독립 이후에 그들은 프랑스에게 약탈당한 어마 어마한 문화재에 대한 반환을 요구하기 시작하였지만 프랑스 정부는 지금까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가 캄보디아 교수 친구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로는 앙코르 시대의 중요한 문화재는 캄보디아보다 프랑스가 훨씬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정확한 통계마저 프랑스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프랑스가 약탈한 앙코르 시대 문화재를 이야기할 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다. 시엠립 북쪽에 ‘여인의 성채’라는 이름을 가진 아름다운 ‘번떼이 스레이’사원이 있다. 대개의 앙코르 유적은 왕에 의해서 지어졌지만 이 사원은 보기 드물게 왕의 총애를 받는 신하에 의해서 지어진 사원이다. 그래서 왕이 축조한 여느 사원보다 규모를 크게 만들진 못했지만 대신 아담한 규모의 사원을 마음껏 뽐내어 건축한 대단히 아름다운 사원이다. 그리고 이 사원에는 앙코르 유적 중에서도 제일 아름답다는 여신상이 있는데 오래전 이것을 도굴하려던 일이 있어 소개하겠다. 1923년 프랑스의 한 청년이 이곳을 관람하던 중 벽면에 부조된 여신상을 떼어내려다 현지 경찰에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러나 이 조각상은 단순 문화재를 넘어서 국보급 가치를 가질 정도로 높게 평가받고 있던 유물이었기에 캄보디아 왕실의 노여움은 대단히 컸으며 이에 대해 강경 대응에 나서게 된다. 결국 이 청년은 수도 프놈펜으로 압송되어 감옥에 갇히게 된다. 결국 6개월 후 프랑스와의 협상을 통해 석방되었고 강제 추방되었지만 식민 지배를 받는 약소국 캄보디아가 보여준 강경 대응에 프랑스 정부도 곤혹스러웠다고 전해진다. 왜냐면 식민 통치를 하는 프랑스 입장에서 보면 당시에는 문화재 도굴을 포함한 밀반출이 큰 죄의식 없이 벌어지고 있었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 청년은 몇 년 후인 1930년, 이 도굴 사건을 주제로 한 자전적 소설을 집필하여 출간하였으니 그 책이 유명한 ‘왕도로 가는 길(La Voie royale)이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는 다름 아닌 유명한 프랑스 대문호 ‘앙드레 말로(André-Georges Malraux)’이다. 그는 이후에도 ‘인간의 조건(1933년)’ 이라는 작품으로 프랑스 최고의 문학상을 수상하였고 후에 프랑스 문화부 장관까지 역임하였지만 이때의 도굴 사건으로 그는 대문호라는 평가와 더불어 도굴꾼이란 불명예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번떼이 스레이’ 사원에 가게 되면 관광 가이드로부터 듣게 되는 설명에 어김없이 ‘앙드레 말로’의 도굴 사건이 설명되고 있고 관광 가이드북에도 소개되고 있으니 그는 죽어서도 도굴꾼의 멍에를 계속 지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유적 반환에 대한 일화가 있다. 2016년 1월 23일, 캄보디아는 프랑스로부터 중요한 문화재 한 점을 반환 받아서 이 유적의 환영 행사를 성대하게 치렀던 일이 있다. 이것은 1889년경 약탈되어 프랑스 파리의 ‘기메박물관’에서 보관 중이던 캄보디아 국보급 ‘하리하라’ 힌두신의 석상이고 약탈 당한지 13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이 신상은 불법으로 반출될 당시에는 원래의 신상이 거대하고 무거운 이유로 목 부분을 잘라 아름다운 두상만 반출하였고 캄보디아에는 나머지 몸통 부분만 남아 있었는데 이때의 반환으로 온전히 전체가 합체된 것이다. 그래서 이때의 반환식을 캄보디아 정부에서는 ‘하리하라’신상 몸체 합체식이라 하여 국가적인 거대 환영식으로 치렀다. 얼마나 많은 문화재가 해외로 밀반출 되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그 수량이 방대하지만 캄보디아 정부의 노력으로 되돌려 받은 문화재는 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실정이다. 오늘날 캄보디아 당국은 관광객들로 인한 문화재 불법 반출이나 물리적 훼손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행위가 적발되었을 때 대단히 엄하게 처벌하고 있다. 그런데 2014년 8월 12일 한국인 대학생 봉사단원이 앙코르 유적을 훼손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장소는 유명한 유적지 ‘앙코르 톰’의 주출입문인 ‘남문’에서 벌어졌다. 한국인 청년은 사진을 찍기위해 몸을 움직이다가 ‘남문’ 입구 좌우에 조각된 108개의 석상 중 한 개의 석상 머리 부분을 훼손하는 일이 생기게 된다. 이 일은 캄보디아 전국은 물론 외신으로까지 보도 되었으며 그 파장이 일파만파 번지게 되었다. 여론 또한 나쁘게 악화되었으며 파문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게다가 당시 목격자들은 이 한국 청년이 손으로 석상의 머리 부분을 밀쳤다고 하였으니 이 행위는 대단히 중대한 범죄 행위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은 이 일로 추락한 석상의 머리 부분은 원래의 조각상 머리 부분이 아닌 이미 훼손된 부분을 시멘트로 만들어 얹혀 놓은 모조품으로 밝혀졌고 파손의 행위 역시 손으로 밀친 것이 아니라 사진의 구도를 잡기 위해서 몸을 살짝 기대는 순간 이미 약해진 접합 부분이 분리되며 모조품 두상 부분이 추락하였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결국 캄보디아 경찰 당국과 유적을 담당하는 당국의 고심 끝에 해당 한국 학생에게 경고로 마무리 되었다. 만일 이 훼손된 유물이 모조품이 아닌 진품이었다면 엄한 처벌과 손해 배상을 피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어쨌거나 한국은 이 일로 국제 망신을 톡톡히 치렀던 사건이었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캄보디아 정부는 관광객에 의한 유적 훼손이나 파손에 대비한 다양한 방도를 마련하여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지의 수많은 문화재들은 캄보디아 당국의 노력만으로 지켜지기엔 그 규모가 방대하고 관리에 어려움도 있어 관광객들의 수준 높은 문화 의식의 협조가 절실히 필요하다. 필자는 현재 캄보디아 정부 주관으로 시행되고 있는 앙코르 유적 환경 개선 프로젝트에 자문 교수로 참여하고 있어 거의 매일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알려진 ‘앙코르 왓’에 나가고 있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하여 외국인 관광객이 거의 없는 한적한 ‘앙코르 왓’을 보면서 인류에게는 큰 재앙이지만 앙코르 유적의 입장에서 보면 긴 휴식기를 가지게 되었고 이러한 때를 이용하여 여러 복원 사업도 진행되고 있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대부분의 앙코르 유적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캄보디아 국민의 문화유산이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가 지키고 보존해야할 세계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이제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한 관광 금지도 머잖아 해제되리라고 전망한다. 그리고 앙코르 유적군에는 예전처럼 많은 관광객들의 방문으로 활기를 되찾을 것이다. 문화재 보호에 수준 높은 한국인 관광객들의 방문이 기대된다. ◈ 본 전문가 컬럼은 한국복지신문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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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철 작가, '특이한 아이 특별한 청년' 출간기념, 재능기부 북 콘서트 무료특강[전주=한국복지신문] 백광석 기자= ‘특이한 아이 특별한 청년’ 의 저자 백수청년 정현철 작가의 2021 재능기부 북콘서트가 지난 11일부터 '호남권역 마이스터고 장학생 비전 특강' 강연을 시작으로 연중 진행된다고 22일 밝혔다. 이번 출간 기념으로 청소년과 청년들을 위해 진행되는 북콘서트는 올 한해 모든 일정이 재능기부 무료 특강으로 진행될 예정이며, 강연 주제는 꿈과 진로에 대한 동기부여와 함께 자기주도적 삶을 사는 방법을 100가지 에피소드를 유쾌하게 전해준다. 또한, 정현철 작가는 강연을 통해 "평범하게 조연이 되어 사는 것보다 특이하고 특별하게, 각자 삶의 주인공이 돼 사는게 쉽다" 고 이야기한다. 특히, 정현철 작가는 현재 (주) 비나텍의 조직문화 및 교육담당자로 재직 중에 있으며, 과거 이벤트회사 청년창업, ROTC육군장교, 한솔교육 팀장, 비영리단체 백수청년과 사람들 대표 등의 이력을 지녔다. 한편, 재능기부 북콘서트는 2021년 올 한해 언제든지 ‘특이한 아이 특별한 청년’ 웹 사이트에서 신청할 수 있으며, 도서 구입은 온라인에서 구입가능하고 도서인세는 전액 기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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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로타리 3670지구 곽인숙 총재 신년사[전주=한국복지신문] 김천봉 기자= 곽인숙 국제로타리 3670지구 총재는 ‘로타리안’ 이라는 이름으로 초아의 봉사를 다 하고 계시는 자랑스러운 국제로타리 3670지구 로타리안께 진심으로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며 신년사를 20일 밝혔다. 곽인숙 총재의 2021년 신년사 전문은 다음과 같다. 안녕하십니까? 국제로타리 3670지구 총재 곽인숙입니다. 2021년 신축년을 맞아 우리 도민 여러분 각 가정에 행운과 사랑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 합니다. 특히 ‘로타리안’이라는 이름으로 초아의 봉사를 다 하고 계시는 자랑스러운 국제로타리 3670지구 로타리안께 진심으로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도민 여러분! 2020년 한 해 너무도 수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다해 위로를 드립니다. 평화로운 일상에 날아든 상상도 못했던 재앙 앞에서 1년을 넘게 사투를 벌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치유의 시간이 어서 빨리 찾아오기만을 간절히 바랍니다. 예상치 못한 위기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불행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곤 합니다. 누군가를 원망하기도 하고 질책하기도 하며 불행의 원인을 나 아닌 타인과 외부에서 해결책을 찾으려 하지요. 하지만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위기가 닥쳤을 때 나 부터 단속을 하고 단단히 점검 합니다. 사람의 노력으로 쉽게 바꿀 수 없는 상황이라면 빠르게 받아들이고 그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야 합니다. 원망하고 한탄하기 보다는 맞딱뜨린 어려움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머리 맞대고 모색해야 합니다. 저 역시 국제로타리 3670지구 최초의 여성 총재로 당선되어 큰 포부와 희망으로 임기를 시작하였지만 코로나19 라는 악재가 앞을 가로막는 것 같아 1년이라는 짧은 임기 안에 그 꿈을 다 실현하지 못할까 마음이 조급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고 좌절하는 이에게는 그 어떤 보람과 결실도 없기에 주어진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고 역할과 임무를 다하고자 마음 먹었습니다. 큰 규모의 행사는 어려워졌지만 대신 회원 한 분 한 분 가까이에서 로타리의 큰 이상과 비전을 심어주고 전달해 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덕분에 회원들의 작은 소리도 듣고 세심한 곳까지 살펴 볼 수 있었고 오히려 회원들에게 봉사에 대한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고 했습니다. 안된다고 하면 될 일도 안될 것이고 뭐든 하려고 노력하면 막힌 길도 열리는 법입니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시간이 주어집니다. 그 시간 안에서 누군가는 벌떡 일어나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사람이 반드시 있습니다. 지금은 시기적으로 환경적으로 많이 어려운게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입니다. 하지만 낙담하고 포기하기보다는 나 자신을 좀 더 다독거려 주고 내 가까운 주변 사람들끼리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이 시기를 잘 견뎌 낸다면 우리가 원하는 좋은 날이 반드시 찾아올 것입니다. 나아질거라는 확신과 그를 위한 멈추지 않는 열정만이 우리를 예전의 일상으로 안내할 것입니다. 끝으로 이 어려운 시기에 사회 각 분야에서 맡은 바 소임으로 타인을 위해 사명감을 불사르고 계신 전국의 의료진을 비롯한 봉사자들께 거듭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로타리 역시 고귀한 사명감으로 봉사를 멈추지 않겠습니다. 곽인숙 총재는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목청 높여 크게 웃을 수 있는 평화로운 일상을 꿈꾸며 2021년 한 해는 위기 극복과 감사의 한 해가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며 신년사를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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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반도 첫 수도는 고창이다[고창=한국복지신문] 이춘희 기자= ‘한반도 첫 수도 고창’ 은 민선 7기 고창군 군정 방침에 처음 등장한다. ‘정착 생활을 시작했던 신석기시대 이후로 한반도에서 한민족 공동체 문화가 크게 융성한 첫 지역이 고창이다’ 라는 뜻이기도 하다. 필자 또한 ‘한반도 첫 수도는 고창이다’ 라고 생각한다. 선사시대 기후와 고인돌 그리고 고대 언어 등이 이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창이 왜 한반도 첫 수도인지 몇 가지를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선사시대 기후가 말해 주고 있다. 구석기시대 5만3천년전 지구에 최후의 대빙하기가 찾아온다. 이때 지구의 북위 40도 이북은 사람이 살 수 없는 얼어붙은 땅이 된다. 만주와 요동·요서 등 지역에서 생활하던 구석기인들 중 10%와 당시 가까운 주변에 있던 사람들만이 한반도 북위 40도 이남 동굴로 추위를 피해 살아남는다. 그러다가 1만2000년전 지구 기후가 따뜻해지자 신석기인들은 동굴에서 나온다. 이때부터 이들은 좁은 공간 내 많은 인구로 인한 식량부족문제 해결을 위해 벼 재배 등 정착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나 9천년전까지 동굴 밖은 지금보다 춥고, 만주 등 이북은 곡식 재배가 불가능한 지역이다. 그래서 신석기인들은 비교적 더 따뜻하고 벼 농사 등이 용이한 남부지역, 특히 고창을 중심으로 한 전라도 지역으로 몰려든다. 이러한 인구 터미널에서 최초의 한민족 공동체 문화가 이른 시기에 싹튼다. 실제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는 '한민족의 기원 및 형성과 고조선문명의 탄생' 저서에서 구석기인들 중 일부가 고창 일대로 피한(避寒)하였고, 이들이 동굴에서 나와 신석기시대 고창지역에 큰 부족을 형성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둘째 선사시대 고인돌이 말해 주고 있다. 세계 고인돌의 50%가 한반도에, 한반도 고인돌의 70%가 전라도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이러한 전라도에서도 고창은 최고의 고인돌 밀집도를 보인다. 또한 고창은 가장 초기 형태라고 하는 개석식에서부터 바둑판식, 과도기적인 남방식과 북방식 혼합형 그리고 북방식의 완전한 형태를 갖춘 탁자식까지 고인돌의 발달 변천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고창에는 초기 고인돌의 특징이기도 한 부장품이 없는 고인돌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이렇듯 비교적 빠른 시기에 꽃 피운 고창 고인돌 공동체 문화는 지구 온도 상승에 따른 인구 확산 이동과 함께 한반도와 만주 등으로 퍼져나간다. 셋째 선사시대 고대언어가 말해 주고 있다. 신석기시대 초 비교적 따뜻한 한반도 남부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3천여년 동안 정착생활을 하면서 언어 문화가 통일된다. 지금까지 남쪽 지방에 남은 사람들은 사투리로 고대 언어의 흔적을, 세계 여러 나라로 흩어진 이들은 우리 사투리와 유사한 원시 언어를 지니고 있다. 실제 다수의 언어학자들은 선사시대 한반도와 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여러 민족의 고대 언어와 남부지역 특히 전라도 사투리 사이에는 많은 유사 공통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고창은 마한 54개국 중 ’모로비리국‘ 으로 비정되는데 있어 학자들간 이견이 없는 몇 안되는 지역 중에 하나다. 으뜸을 지칭하는 ’ᄆᆞᆯ‘ 과 넓은 평야를 의미하는 ’비리‘ 의 옛 지명이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고 동일한 뜻으로 불리운다. 이것은 선사시대부터 이 지역 공동체의 위상이 매우 컷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위의 내용들을 종합해볼 때 고창은 한반도의 첫 수도요, 한민족 공동체 문화의 시원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위대한 역사성을 지닌 고창군이 한민족과 인류 공동체 번영에 크게 기여하는 새로운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본 컬럼은 한국복지신문과 무관합니다.